추세추종이 가장 불리한 환경은 하락장이 아니라 횡보장입니다. 하락장에서는 최소한 방향이 있으므로 시장 필터가 신규 진입을 막거나, 숏이 가능한 경우 반대 방향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반면 좁은 범위에서 오르내리는 구간에서는 신호가 계속 발생하고 계속 실패합니다.
이 현상을 휩쏘(whipsaw)라고 부릅니다. 작동 방식은 단순합니다. 가격이 20일 고점을 돌파해 매수 신호가 나오고, 며칠 뒤 되돌아와 손절에 닿고, 다시 반등해 또 신호가 나오는 흐름이 반복됩니다. 매매 한 건의 손실은 규칙대로 제한되지만, 이런 매매가 연속되면 손실이 누적됩니다.
숫자로 보면 구조가 분명해집니다. 아래는 계산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입니다.
구간 성격
매매 건수
성공
평균 수익
실패
평균 손실
합계
추세 구간
10건
3건
+12%
7건
−2%
+22%
횡보 구간
10건
1건
+3%
9건
−2%
−15%
같은 규칙, 같은 손절 폭인데 결과가 반대입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성공 시 평균 수익입니다. 추세 구간에서는 한 번 맞은 포지션이 크게 움직여 여러 번의 손실을 덮지만, 횡보 구간에서는 맞은 포지션도 곧 되돌아와 수익이 작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횡보 구간의 손실이 규칙 위반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규칙을 완벽하게 지켜도 발생하는 비용입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부진 구간에서 "규칙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파라미터를 바꾸게 되고, 바꾼 직후 추세가 시작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급반전: 신호가 늦게 도착하는 구조
두 번째 취약 구간은 방향이 급격히 뒤집히는 국면입니다. 추세추종의 신호는 정의상 가격이 이미 움직인 뒤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하루 이틀 만에 방향이 바뀌는 상황에서는 진입도 늦고 청산도 늦습니다.
특히 위험한 형태는 갭입니다. 손절 가격을 정해 두었더라도 시가가 그 가격보다 아래에서 시작하면 계획한 가격에 나올 수 없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스톱 주문이 특정 가격에서의 체결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안내합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가격제한폭이 ±30%로 운영되지만, 하한가 부근에서 매도 호가가 쌓이면 체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다음 거래일까지 포지션이 남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상관관계가 급격히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평소에는 다르게 움직이던 종목들이 시장 전체 충격 앞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3편에서 인용한 것처럼 1987년 10월 폭락 다음 날 금리 선물에 롱으로 몰려 있던 터틀들은 하루에 계좌의 20~40%를 잃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개별 매매의 손절이 모두 정상 작동해도 동시에 발동하면 그날의 손실은 개별 손실의 합이 됩니다.
성과 편차: 같은 전략이 10년 단위로 다르게 보인다
추세추종을 평가할 때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 관찰 기간입니다. 특정 몇 년의 성과만 보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옵니다.
매니지드 퓨처스 업계의 대표 지표인 SG Trend Index를 보면 편차가 드러납니다. 2022년 이 지수는 27.3% 상승해 2000년 산출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여러 자산에서 방향성이 뚜렷했던 해였습니다. 반면 2010년대 상당 기간은 추세추종에 불리한 구간으로 평가되며, 저금리와 정책 개입이 이어지면서 변동성이 낮고 방향이 자주 뒤집히는 환경이 반복됐습니다.
한편 AQR의 Hurst, Ooi, Pedersen은 1880년까지 데이터를 확장한 연구에서 1880년 이후 모든 10년 구간에서 시계열 모멘텀이 평균적으로 양의 수익을 냈다고 보고합니다. 이 두 관찰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장기 평균이 양수라는 것과 특정 몇 년이 부진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성립합니다.
여기서 개인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위 지표들은 여러 자산군에 분산하고 롱과 숏을 모두 사용하는 기관 포트폴리오의 성과입니다. 국내 주식 몇 종목으로 운용하는 개인의 결과 분포는 이보다 훨씬 넓으며, 장기 평균에 수렴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관찰 대상
적용 범위
개인이 주의할 점
AQR 장기 연구
다자산·롱숏 포트폴리오, 100년 이상
개별 종목 매매의 성공률이 아님
SG Trend Index
대형 CTA 운용사들의 실제 성과
레버리지와 분산 수준이 개인과 다름
개인 주식 계좌
소수 종목, 롱 중심
표본이 작아 편차가 훨씬 큼
부진 구간에 대응하는 방법
부진 구간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구간을 견딜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첫째, 시장 필터입니다. 지수가 장기 이동평균 아래에 있을 때 신규 진입을 하지 않는 규칙은 하락 국면의 손실 누적을 줄입니다. 다만 이 필터는 횡보장에는 잘 듣지 않습니다. 횡보 구간에서는 지수가 이동평균 위아래를 오가기 때문에 필터 자체가 자주 뒤집힙니다.
둘째, 현금 비중입니다. 현물 계좌만 사용하는 경우 현금은 유일한 방어 수단입니다. 신호가 줄어드는 구간에서 자동으로 현금 비중이 늘어나는 구조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신호가 없는데도 자금을 계속 투입하고 있다면, 조건을 완화해 진입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셋째, 규모 축소입니다. 4편에서 본 것처럼 터틀 규칙은 계좌가 10% 하락할 때마다 포지션 계산 기준을 20% 줄였습니다. 부진이 이어질수록 베팅이 작아지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 두면,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가는 것을 늦출 수 있습니다.
넷째, 신호 기간의 분산입니다. 20일 돌파만 쓰면 짧은 되돌림에 자주 걸리고, 55일 돌파만 쓰면 진입이 늦습니다. 터틀이 두 시스템을 함께 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기간을 늘리는 것이 항상 해답은 아니며, 긴 기간은 큰 되돌림을 그대로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추세추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마지막으로, 대응 수단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한계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추세추종은 손실 자체를 없애지 못합니다. 승률이 낮다는 것은 대부분의 매매가 손실로 끝난다는 뜻이며, 이 구조는 규칙을 아무리 다듬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또한 미래의 시장 환경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추세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과거 성과가 미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이 전략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특히 중요한 한계는 표본 수입니다. 기관의 성과 지표는 수십 개 시장에서 수백 건의 매매를 누적한 결과입니다. 한 해에 수십 건을 매매하는 개인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표본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진 구간이 전략의 문제인지 시장 국면 때문인지 구분하려면 그 시간을 견뎌야 하고, 그 사이에 계좌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체크포인트
최근 손실이 규칙 위반 때문인지 시장 국면 때문인지 기록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현재 시장이 추세 구간인지 횡보 구간인지 판단할 기준을 정해 두었는가?
부진 구간에서 규칙이나 파라미터를 바꾼 적이 있는가?
연속 손실 시 포지션 규모를 줄이는 규칙이 있는가?
신호가 줄어드는 구간에서 현금 비중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인가?
보유 종목이 시장 급락 시 함께 움직일 가능성을 점검했는가?
참고하는 성과 지표가 개인 계좌와 같은 조건에서 산출된 것인가?
자주 묻는 질문
Q1. 몇 번 연속으로 손절하면 전략을 바꿔야 하나요?
연속 손실 횟수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승률이 40% 아래인 전략에서는 5~6회 연속 손실이 통계적으로 드물지 않습니다.
바꿔야 할 근거는 횟수보다 원인입니다. 손실이 규칙대로 제한되고 있는지, 계획한 손실 범위를 넘고 있는지, 규칙을 지키지 못한 매매가 섞여 있는지를 기록에서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Q2. 횡보장인지 추세장인지 미리 알 수 있나요?
사후에는 분명하지만 실시간으로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변동성 지표나 이동평균의 기울기로 추정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지나간 데이터로 계산됩니다.
따라서 국면을 맞히려 하기보다, 어느 국면에서도 계좌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줄어들지 않도록 규모를 관리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핵심 요약
추세추종은 시장 국면에 의존하는 전략이며, 부진 구간은 결함이 아니라 설계상의 비용입니다.
가장 불리한 환경은 하락장이 아니라 횡보장이며, 규칙을 완벽히 지켜도 손실이 누적됩니다.
급반전 구간에서는 신호가 늦게 도착하고, 갭이나 하한가에서는 계획한 손절가에 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SG Trend Index는 2022년 27.3%로 산출 이후 최고 성과를 냈지만 2010년대 상당 기간은 부진했습니다.
시장 필터, 현금 비중, 규모 축소, 신호 기간 분산은 부진 구간을 견디는 수단이지 없애는 수단이 아닙니다.
기관 성과 지표는 다자산·롱숏 포트폴리오 기준이므로 개인 계좌의 결과 분포와 직접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부진 구간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은 원인의 구분입니다. 매매 기록에 규칙 준수 여부와 시장 상태를 함께 남겨 두면, 손실이 국면 때문인지 실행 때문인지를 나중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Brian Hurst, Yao Hua Ooi, Lasse Heje Pedersen, "A Century of Evidence on Trend-Following Investing", AQR / The Journal of Portfolio Management
Société Générale Prime Services, "SG Trend Index" 연간 성과 자료
OriginalTurtles.org, "The Original Turtle Trading Rules", 2003
SEC Investor.gov, "Performance Claims"
SEC Investor.gov, "Understanding Order Types"
한국거래소(KRX), "증권·파생상품시장 가격제한폭 확대 시행"(2015년 6월 15일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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