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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세추종(trend following)은 가격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방향에 올라타고, 그 방향이 끝났다고 판단되면 빠져나오는 투자 방식입니다. 기업의 적정 가치를 계산해 저평가 구간을 찾는 방식과 달리, 추세추종은 앞으로 가격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삼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추세추종이 "많이 맞히는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추세추종은 자주 틀리되 틀렸을 때 작게 잃고, 드물게 맞았을 때 크게 버는 구조로 수익을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그 구조가 왜 성립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는지, 그리고 개인 투자자가 자신의 기록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정리합니다.
추세추종 투자 시리즈 0편. 이 글은 시리즈의 출발점입니다. 다음 글은 1편 제시 리버모어입니다. 시리즈 전체 목차는 이 글 아래쪽 "시리즈 목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세추종은 무엇인가
추세추종은 가격 자체를 판단 근거로 삼는 방법론입니다. 기업의 이익이 얼마나 저평가되었는지가 아니라, 지금 가격이 일정 기간의 고점을 넘어섰는지, 이동평균 위에 있는지, 상승 폭이 커지고 있는지를 봅니다. 학술 문헌에서는 이 개념을 시계열 모멘텀(time-series momentum)이라고 부르며, 자산의 과거 수익률 부호가 다음 기간 수익률을 예측하는 성질을 가리킵니다.
이 방식은 두 가지 판단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입니다. 첫째는 "무엇을 살 것인가"이고, 둘째는 "틀렸을 때 언제 나갈 것인가"입니다. 추세추종은 두 번째 판단을 먼저 정합니다. 진입 시점에 이미 청산 조건과 손실 허용 범위가 정해져 있고, 그 조건에 닿으면 시장에 대한 의견과 무관하게 나옵니다.
AQR의 Hurst, Ooi, Pedersen은 18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이터로 시계열 모멘텀을 검증한 연구에서, 1880년 이후 모든 10년 구간에서 이 전략이 평균적으로 양의 수익을 냈고 전통 자산과의 상관관계가 낮았다고 보고합니다. 다만 같은 연구는 이것이 개별 종목 단타의 승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장에 분산된 포트폴리오의 장기 평균 성과라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가치투자와 추세추종은 무엇이 다른가
두 방식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가"와 "틀렸을 때 어떻게 하는가"에서 갈립니다. 아래 표는 두 접근의 판단 구조를 비교한 것이며,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하락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가치 기반 접근에서 주가 하락은 같은 자산을 더 싸게 살 기회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추세추종에서 하락은 "내 판단의 전제가 무너졌다"는 신호로 처리됩니다. 이 때문에 추세추종에서는 물타기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진입 근거가 가격의 방향이었는데 그 방향이 반대로 갔다면, 근거 자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규모를 늘리는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승률이 낮아도 수익이 나는 구조
추세추종의 성과는 승률이 아니라 기댓값에서 나옵니다. 기댓값은 한 번의 매매에서 기대할 수 있는 평균 손익이며, 승률과 평균 손익비를 함께 넣어 계산합니다.
기댓값 = (승률 × 평균 수익) − (패율 × 평균 손실)
숫자로 확인하면 구조가 분명해집니다. 아래는 계산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가상의 예시이며, 실제 성과를 예측하는 값이 아닙니다.
A 전략은 열 번 중 여섯 번 맞혔지만 합계는 0%입니다. B 전략은 여섯 번 틀렸지만 합계는 +24%입니다. 추세추종이 목표로 하는 형태는 B에 가깝습니다. 자주 틀리는 것을 감수하는 대신, 맞았을 때 포지션을 오래 유지해 평균 수익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가 따라 나옵니다. 첫째, 평균 손실을 일정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이 구조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 번의 큰 손실이 여러 번의 이익을 지우면 기댓값 계산의 전제가 깨집니다. 둘째, 이익 구간에서 너무 일찍 나오면 평균 수익이 줄어 역시 구조가 무너집니다. 추세추종에서 손절과 익절을 대칭적으로 다루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위 계산은 매매 결과가 서로 독립적이고 손실 폭이 일정하게 통제된다는 가정 위에 있습니다. 실제 시장에서는 갭 하락이나 유동성 부족으로 손실이 계획보다 커질 수 있고, 여러 종목이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무너지면 손실이 겹칩니다. 이 문제는 4편 래리 하이트에서 포지션 크기 관점으로 다시 다룹니다.
좋은 조건과 통하지 않는 조건
추세추종이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는 구간은 가격이 한 방향으로 오래 이어지고, 변동성이 확대되며, 되돌림이 얕은 국면입니다. 이런 구간에서는 진입 후 손절에 닿지 않은 채로 포지션이 유지될 확률이 높아지고, 소수의 큰 수익이 다수의 작은 손실을 덮습니다.
반대로 통하지 않는 구간은 뚜렷합니다. 가격이 좁은 범위에서 오르내리는 횡보장에서는 돌파 신호가 나온 직후 되돌림이 발생해 손절만 반복됩니다. 이런 현상을 휩쏘(whipsaw)라고 부릅니다. 정책 발표나 실적 쇼크처럼 하루 만에 방향이 뒤집히는 급반전 구간에서도 추세추종은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호가 나오는 시점에는 이미 가격이 상당 부분 움직인 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니지드 퓨처스 업계에서는 2010년대 상당 기간이 추세추종에 불리한 구간으로 평가됩니다. 반대로 여러 시장에서 방향성이 뚜렷했던 2022년에 SG Trend Index는 27.3% 상승해 2000년 산출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방법론이 시장 국면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낸다는 점은, 추세추종을 판단할 때 특정 해의 성과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9편 추세추종의 한계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한국 시장에서 달라지는 조건
해외 추세추종 문헌은 대부분 선물 시장을 전제로 합니다. 여러 자산군에 분산하고, 롱과 숏을 모두 사용하며, 레버리지와 유동성이 충분한 환경입니다. 한국 개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으로 같은 방법을 적용할 때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첫째, 가격제한폭이 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2015년 6월 15일부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가격제한폭을 ±15%에서 ±30%로 확대했습니다. 하루 변동폭에 상한이 있다는 것은 급락 시 손실이 한 번에 무한정 커지지는 않는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하한가에서 매도 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다음 날까지 포지션이 남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 개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에서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입니다. 추세추종의 원형은 롱과 숏을 대칭적으로 사용하지만, 현물 계좌만 쓰는 경우에는 상승 추세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시장 전체가 하락하는 구간에서는 현금 비중을 늘리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어 수단이 됩니다.
셋째, 거래대금이 작은 종목에서는 신호 자체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주문만으로 신고가가 만들어지거나 거래량이 급증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어, 신호를 확인하기 전에 평균 거래대금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체크포인트
- 진입 전에 청산 조건과 손실 허용 범위를 숫자로 정해 두었는가?
- 지금 진입하려는 근거가 가격의 방향인가, 아니면 가격이 싸다는 판단인가?
- 최근 매매 기록에서 평균 손실이 평균 수익보다 작게 유지되고 있는가?
- 이익 구간에서 계획한 청산 조건보다 먼저 나온 매매가 몇 건인가?
- 지금 시장이 방향성 구간인지 횡보 구간인지 구분할 기준이 있는가?
- 대상 종목의 평균 거래대금이 신호를 신뢰할 만한 수준인가?
자주 묻는 질문
Q1. 추세추종과 모멘텀 투자는 같은 말인가요?
겹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학술 문헌의 횡단면 모멘텀은 여러 종목의 상대 수익률을 비교해 강한 쪽을 사는 방식이고, 추세추종은 개별 자산의 과거 수익률 부호를 보는 시계열 모멘텀에 더 가깝습니다.
실무에서는 두 개념이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떤 기준으로 종목을 골랐는지 기록해 두면 이후 복기에서 구분하기 쉬워집니다.
핵심 요약
추세추종은 가격의 방향을 근거로 진입하고, 그 근거가 사라지면 나오는 규칙 기반 투자 방식입니다.
- 추세추종은 미래 가격을 예측하지 않고, 이미 나타난 가격 움직임에 반응합니다.
- 성과는 승률이 아니라 기댓값에서 나오며, 평균 손실을 통제하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 하락을 "더 싸진 기회"가 아니라 "근거 소멸"로 해석하기 때문에 물타기를 하지 않습니다.
- 횡보장과 급반전 구간에서는 손절이 반복되며, 이는 전략의 결함이 아니라 비용에 해당합니다.
- 국내 주식에 적용할 때는 가격제한폭, 숏 포지션 제약, 거래대금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추세추종을 실제로 쓰려면 매매마다 진입 근거, 손절 기준, 청산 조건을 기록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승률이 낮은 구간이 정상인지 아니면 규칙을 지키지 못한 결과인지는 기록을 모아 놓아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 목차
- 0편. 추세추종이란 무엇인가 (이 글)
- 1편. 제시 리버모어: 추세추종의 원형을 만든 트레이더
- 2편. 윌리엄 오닐과 CAN SLIM: 성장주 추세추종의 완성
- 3편. 터틀 트레이딩: 트레이더는 만들어지는가
- 4편. 래리 하이트: 잃지 않는 것을 먼저 계산하는 방법
- 5편. 피라미딩: 이기고 있는 포지션에 더하는 방법
- 6편. 추세추종의 핵심 지표: 신고가, 이동평균, 거래량, 상대강도
- 7편. 추세추종 매매 시스템 만들기
- 8편. 추세추종의 가장 어려운 부분: 심리
- 9편. 추세추종의 한계: 항상 통하는 전략은 아니다
- 10편. 현대 투자자들은 추세추종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참고 자료
- Brian Hurst, Yao Hua Ooi, Lasse Heje Pedersen, "A Century of Evidence on Trend-Following Investing", AQR / The Journal of Portfolio Management
- Société Générale Prime Services, "SG Trend Index" 연간 성과 자료
- 한국거래소(KRX), "증권·파생상품시장 가격제한폭 확대 시행"(2015년 6월 15일 시행)
- SEC Investor.gov, "Performance Cla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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